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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질병, 낙인: 무균사회의 욕망과 한센인의 강제격리』란 책을 읽고 한센병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한센병을 문둥병, 나병이라고 불렸다고 하니 떠올랐던 건 어릴 적 성경에 나오는 나병환자를 고쳐준 예수님, 그리고 그 시대 나병에 걸리면 그 사람은 진영 밖으로 쫓아냈고 벌레보다 못한 취급을 당했다는 공과 공부 내용이었다. 예수님 탄생이 대략 기원전 4년이라고 했으니 정말 아주 오래된 역사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우리나라 저 끝 쪽, 처음 들어본 작은 섬 소록도에 한센인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니 처음엔 놀랍고 신기했다가 한센병 자체로도 고통받았을 텐데 사회로부터 낙인찍혀 강제 격리되고 가혹한 노동과 통과되지 않은 단종법안이었지만 대를 잇지 못하도록 단종수술과 낙태 수술을 강행했다는 내용들을 보니 참담하고 구역질이 나왔다. 조선시대부터 독립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여전히 힘들게 자기 자신과 사회와 싸우고 있었겠구나.란 생각에 아픔이 다가온다.
나균에 의해 감염되는 만성 전염성 질환을 한센병이라 한다. 현재 한센병은 전 세계적으로 24개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연간 1만 명당 1건 미만으로 발생하는 드문 질환이다. 전염되더라도 리팜피신이라는 알약 한 알로 완치가 가능하다.
그러나 정확한 병의 원인을 알지 못하고 치료제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가족 내에서 흔히 발병한다는 점 때문에 유전병이라고 여기기도 했고, 열등한 인종이 주로 걸리는 질병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노르웨이의 한센병 학자 한센이 세균에 의한 감염임을 밝힌 이후에도 병을 대하고 치료하는 방식을 두고 의료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했다고 한다.
이런 사태가 오롯이 환자들의 고통으로 돌아갔을 것이고 강제격리부터 학살, 단종수술과 낙태 수술, 한센인 정착 마을 등의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생각났다. 불과 2년 전 내가 코로나에 걸렸기도 했고, 갑작스러운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공포에 질렸으며 수많은 사망자가 나왔다.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처음 확인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는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고, 2020년 1월에 WHO는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언하였으며, 3월에는 감염병 최고 경고 등급으로 격상시켰다. 2022년 3월 18일 기준으로 4.653억 이상의 확진자와 608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타났다.
전 세계 환자와 사망자 수가 실시간 공유되었고 확진자는 자꾸만 늘어났다. 각국의 정책과 통제 아래 살아가는 상황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불러일으킨 질병에 대한 공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짧은 시간 만들어진 미심쩍은 백신과 그것의 부작용, 자꾸만 변이되는 바이러스, 격리 공간과 치료제 부족, 무엇보다 감염되면 사회적으로 추적과 관리에 들어가며 사생활이 노출되고 일상이 무너질 수 있다는 두려움도 컸다. 이런 점들을 보면 한국의 한센병이 발병했던 때와 조금 비슷하게 겹쳐진 느낌이다. 체내 세균의 유무로 병을 결정하며 병원균의 전파를 막기 위해 격리시설과 나병원을 세우고, 국제회의를 통해 한센병을 세계 공중보건 문제로 인식하며 해결하려던 노력은 오늘과 닮아있다.
한센 병균의 발견(1873년)에 근거한 세균설의 발전으로 한센병이 환자를 매개하여 전염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질병의 확산을 막기 위하여 환자를 격리하기 시작했다.
한센병 확산의 예방을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강제격리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인식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그것을 구현했으며 19세기 유럽 국가들이 자국과 피식민지 지역에서 발전시킨 한센인에 대한 강제격리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였고, 일본에 의하여 조선에 도입된다. 한센병 환자에 대한 강제격리는 오히려 질병을 더욱 확산시키는 모양새를 보였다. 한센병 환자 격리시설은 예산 문제로 인하여 모든 환자를 수용할 수 없었고 환자에 대한 정책적 사회적 압력은 이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이에 따라 환자는 급증하고 결국 건강인들이 한센병에 걸릴 가능성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센인 격리시설에서 환자들은 의식주를 적절히 공급받지 못했으며, 강제노동에 쉽게 동원되었고, 가혹한 폭행과 구금을 했던 억압의 장소였다. 또한 우생사상의 유행아래 법제화와 상관없이 단종 및 낙태 수술을 시행하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정말 충격적인 부분이었던 것 같다. 그들에게 있어 한센병은 큰 장애물이라 여겼고 의학적인 근거보다는 인종주의적이고 우생학적인 측면에서 절멸의 대상이었다. 부부생활은 이 수술을 시행한 후에 가능했으며 임신이 발각된 여성들은 강제로 낙태 수술받아야 했다. 더욱이 충격인 건 적출된 태아는 포르말린 유리병에 담겨 전시되었다. 유리병에 담긴 태아는 주별 순서로 전시되었다는 내용에 끔찍하고 소름 끼쳤다.
광복 이후 소록도에서 84인 학살 사건도 잔인했다. 소록도 병원의 주도권을 놓고 병원 직원들과 의사들이 세력 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소록도 대표 84명이 병원 직원들에게 학살당한 사건이다. 병원 운영권을 쥐고 간호 주임과 다툼을 벌이던 의사 석사학이 환자들을 부추겨 1945년 8월 21일 밤 난동을 일으켰고 이후 간호 주임들은 섬 밖에서 치안대원들을 불러 환자 대표 84명을 죽인 뒤 구덩이에 파묻고 송진유를 부어 불태웠다.
현재는 한센인들의 피해를 국가적으로 인정하여 보건복지부 산하 한센인피해 보상위원회에서 한센인 피해조사를 시행하여 ‘한센인피해 사건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 생활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을 2009년 12월 29일 공포한 후 2010년 12월 30일 시행하여 정부 차원에서 과거 부당하게 신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피해를 받은 한센인들에게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1940년대 후반 한센병 치료제인 디디에스제는 한국에 도입되었고 1950년대 말엔 한센병은 치료가 가능한 질병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WHO를 통해 한국에 강제격리 철폐의 요구로 이어졌고, 한국 정부에 있어서도 강제격리는 엄청난 보건 예산이 소모되는 제도였기 때문에 치료제의 도입으로 환자의 치료가 가능해지자 격리제도는 분화되기 시작했다.
1963년 전염병 예방법에서 한센병 환자의 강제격리 조항들이 삭제되어 음성환자들의 시설 바깥에서의 치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양성환자, 음성이 되었지만 장애를 갖게 된 환자 그리고 다양한 이유에서 사회에서 정착이 힘든 한센인들은 시설에서 퇴원할 수 없었다. 한센인에 대한 사회의 낙인과 차별로 정착촌과 일반사회에 장벽을 만들었고 이에 따라 정착촌은 또 다른 격리 공간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심각한 나의 상태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 말고도 한센인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내가 발견한 것은 무지하고 사회문제에 관심 없는 나 자신이었다.
나는 역사를 잘 모른다. 그리고 사실 사회문제에 관한 관심도 없는 편이다. 학창 시절 교과서의 내용을 칠판에 끊임없이 적던 선생님의 수업을 끝내고 잘만 베꼈으면 되었던 탓에 지루했으며 관심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나이가 들며 내가 살았던 시대의 사회문제와 역사조차 모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한심하고 자괴감이 들어 책을 읽다 중간에 책을 내려놓기도 했다. 나는 왜 이렇게 무지했던 걸까?
책을 읽고 나는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독후감을 쓰며 나는 다시 한번 사회문제와 역사에 관한 공부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편견과 차별이 존재하는 사회에 새로 합류하는 구성원들이 기존의 것들을 토대로 학습하고 편견과 차별이 세대 간 전승되므로 잘못된 정보와 지식 그리고 무지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참고문헌
-김재형(2021), 『질병, 낙인: 무균사회의 욕망과 한센인의 강제격리』,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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